
루시는 길을 지나다가 한 남자에게 대뜸 묻습니다. “싱글이세요?” 환한 미소를 보이며 다가오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는 그녀.

“전화하세요, 멋진 짝을 찾아드리죠.”
업계 최고의 매칭메이커 루시. 까다로운 고객들을 사로잡은 그녀의 기술은 오직 조건을 최대한 만족시켜 주는 것. 그녀들은 하나같이 180cm 이상의 키에 연봉 5억 이상인 40대 훈남을 원하죠. 그리고 그런 남자가 나타납니다.

루시가 매칭을 성공시킨 샬럿의 결혼식. 신랑의 동생 해리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옵니다. 멋진 외모에 사모 펀드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이 남자는 성격까지 시원하죠.
뒤이어 전남친 존까지 등장하며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삼각 구도을 완벽하게 구축하는데… 이 영화는 결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영화 예고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죠.
모든 걸 다 갖춘 남자 해리는 완벽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루시를 원합니다. 매일매일 최고급 식당에서 즐기는 데이트, 그리고 160억 짜리 아파트는 분명 루시에게 환상적인 제안이었고요.

하지만 자신이 매칭한 주선에서 고객이 데이트 폭력을 당하자 루시는 단꿈에서 깨어납니다. 180cm, 5억 원의 연봉, 백인, 공화당원… 이런 조건들이 진짜 행복한 결혼의 조건일까?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 흥미로운 점은 고객들의 행동에 있죠. 어떤 이는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쭈뼜거리며 속삭이거든요. 자신의 요구가 부끄럽든 당당하든 누구도 결혼 앞에서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루시는 그들의 속물적인 내면을 대면하는 사람이고요.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칫 식상하게 여겨지는 결혼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집니다. 이 질문은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져 우리 마음속에 적당한 온도로 들어옵니다.
딱 하나. 결말만 빼고요. 해리와 헤어진 후 가난한 연극배우인 전남친 존을 찾아간 루시. 둘은 낭만적인 여행을 떠나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그리고 여차저차 해피엔딩.
진지한 질문의 답변으로는 너무나 뻔한 결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행복한 결혼의 조건이야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말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결혼이란 진짜 뭘까? 하는 생각, 해보면 좋겠어요.